설탕유희에 대해서

설탕 유희  - 육상수

사진가 김광수의 심장에는 ‘할머니’ 라는 불멸의 존재가 판타지로 살아 숨쉰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종종걸음으로 따라 나선 어린이 김광수에게 남원 시골의 오일장은 미지의 꿈으로 이어지는 광장이었다. 장터에서 만난 어른들의 세상의 창이었고, 바닥에 깔린 풍성한 사물은 소년의 감각을 일깨우는 호기심이자 밤하늘의 북극성이었다. 그 중에서도 주먹만 한 무지개 사탕은 북극성의 중심별 그 자체였다.

할머니로부터 건네받은 사탕의 달콤함은 꿈의 에너지로, 무지개 색은 꿈의 공장이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성장기에 모든 것이 막연하고 막막할 때, 할머니의 손은 꿈의 안내자였으며 미래를 여는 창구였다. 장터로 가는 길에 펼쳐진 논과 밭, 강둑은 추억의 저장고가 되었고, 장터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성의 유전자로 심어져 작가의 정체성을 키웠다.

장터에서 만끽한 ‘설탕의 유희’ 가 60년이 지난 지금에 낭만형제, 아톰과 UFO, 판타지, 메모리, 스윙, 플라잉, 러브홀릭, 피라미드로 재현되라고는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성장 소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한 때의 기억으로 박제되기는 쉬워도 타임캡슐에 봉인되었다가 다시 소생되기는 어렵다. 김광수 작가는 박제와 봉인 해제를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능력의 소유자이며 재창조자이다.

작가는 그 시대를 반영하고 문화와 역사를 생성한다. 
작가 저마다의 추억과 감성의 영역과 농도는 같을 수 없다. 
사진가 김광수는 김광수만의 시대와 문화를 재구성하는 아이콘이 있다. 그의 아이콘은 바로 설탕이다. 그냥 단맛의 그것이 아닌, 몸을 자극하고 꿈을 녹여내는 절대 상징의 설탕이다. 그것은 성장의 에너지이면서 모든 상상의 원천이다.

분쇄된 사탕 파편이 트루카나의 밤하늘에 별무리로 수놓았고, 원색의 칼라는 사과의 붉은 열매에 매달렸으며, 강물을 따라 걸으며 마음에 새긴 풍경은 구름 한 조작에 걸려 있다. 맹물에 설탕 한 숟가락 타서 마시는 그 시절의 사탕가게 주인은, 한 소년으로 호기심 어린 눈빛이, 훗날 인화지 위에 기록되어 안착이 되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세상은 모를 일이고 요지경이라 했던가.

시골의 강바람과 풀내음, 하늘빛과 별밤에 기대어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없는 이들에게는 설탕 범벅의 사탕이 사소한 물건으로 소홀히 여길 수 있겠지만, 사진가 김광수에게는 다락방에 숨어들어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소리 죽여 빨아 댔던 그 감각의 순간은 하루의 전부를 넘어 우주 그 자체였다.

긴 시간이 지나도 절대 망각할 수 없는 할머니의 존재성과 사탕의 추억은 사진가 김광수의 몸이면서 이데아다. 지금 그 진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 모두가 김광수의 사진 앞에 서서 잠시라도 자신만의 어린 시절의 꿈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그 뒤에 서 있는 사진가 김광수는 흐뭇하면서도 아쉬움이 깃든 미소로 화답할 것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의 우리들이 이렇게라도 오늘의 ‘나’ 를 벗어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